2008년 05월 31일
Platon, Theaitetos
구조:
- 도입 142-145
- 서설 145-151
- 예제에 따른 정의의 문제 145-147
- 수학적 정의 147-148
- 산파술 148-151
- 감각으로서의 지식 151-187
- 정의 151
- 프로타고라스와 헤라클레이토스 151-152
- 헤라클레이토스 반론 152-160
- 프로타고라스 반론 160-172
- 여담: 철학자의 자세 172-177
- 결론 177-187
- 참된 의견으로서의 지식 187-201
- 근거를 지닌 참된 의견으로서의 지식 201-210
- 소크라테스의 꿈 201-206
- "로고스" 206-210
- 결론 210
《테아이테토스》는 단일 대화편 중에는 가장 긴 편에 속하며, "지식의 본질"이라는 주제의 특성상 대화편 중에서도 난해한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을 내리는 데 실패해서 읽는 사람을 허무하게 만든다.) 지식은 감각aisthesis을 통해 형성되지 않는다. 의견doxa은 아무리 참된 것이라 해도 의견일 뿐, 지식episteme이 되지 않는다. 감각이나 의견이 지식과 동일시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테아이테토스의 첫 정의는 "지식은 감각이다"이고, 소크라테스는 이를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panton chrematon metron anthropon"와 논리적으로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 (실제로 그러한지는 의문의 여지로 남는다)
헤라클레이토스와 같이 "만물이 유전한다panta rhei"라고 한다면 대상을 감각하는 그 순간에도 대상은 변화해 버린다. 그것을 감각하는 자신 역시 변화한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는 감각을 통해 얻은 지식은 그 찰나의 순간을 넘어서면 지식으로서 성립하지 않는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기반 위에 놓인 인식론은 회의주의 혹은 상대주의로 이어진다. 프로타고라스의 "인간 척도"가 여기에서 등장한다. 각 인간에게 그러한 것이 곧 그 인간에게 진리라는 상대주의적 태도는 상대주의 자체를 제외한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만든다. 역설적으로 "상대주의"의 절대성을 주장해야 하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이에 따르면 누구도 "틀릴" 수 없으며, 소크라테스가 "프로타고라스는 틀렸다"라고 해도 프로타고라스는 그것을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는 진실"이라고 인정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이를 더 발전시켜 단지 "감각"이 아니라 "의견"으로 나아간다 해도 의견이 아무리 그럴 듯 하다 하여 지식이 요구하는 확실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참된 의견이 존재하려면 그 역인 그릇된 의견이 존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참된 의견을 지식으로 간주하면 그릇된 의견이 어떻게 생성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소크라테스와 테아이테토스를 괴롭히는데, 이 부분은 앞부분과 달리 짧은 분량 안에 많은 내용이 압축적으로 되어 있어 독자도 함께 괴롭다. 테아이테토스의 마지막 시도는 의견과 합리적 근거logos가 같이 와야 지식이 된다는 것이나, 이 logos의 개념도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대화는 끝나고, 소크라테스는 불경죄로 기소되어 재판소로 향한다. 드라마 내부적으로 《에우튀프론》과 연결된다.
내 짐작일 뿐이지만 플라톤은 이미 결론을 준비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이후에 등장하는 "이데아"가 그것이다. (172-177 사이의 일부 구절은 이데아를 암시하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기도 하거니와) 플라톤 자신이 결론을 못 내려서 미완으로 남겼다면 그 외의 대안들을 이렇게 체계적으로 제거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테아이테토스》를 비롯해 이데아론을 보다 본격적으로 제시하기 시작하는《향연》, 《파이돈》, 《파르메니데스》는 드라마 내부 형식상 몇 겹의 '플라톤 아닌 다른 사람'이 소크라테스의 대화 내용을 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건 내가 보기엔 플라톤 자신의 이론을 소크라테스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행위에 대한 오리발로 보인다. (후에 그냥 대놓고 소크라테스를 쓰는 걸로 봐서 별 항의는 없었던 모양이다.)
《테아이테토스》는 많은 점에서 《티마이오스》 와 대비된다. 티마이오스는 확실히 알 수는 없더라도 가장 그럴 듯하고 앞뒤가 맞는 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조물주demiurgos의 세계 창조에서 시작하는 이야기mythos를 펼친다. 그 외의 대화편에서 이렇게 작정하고 이야기를 통해 자기 논리를 정당화하는 자는 《프로타고라스》 편의 주인공, 프로타고라스 뿐이다.
# by Noir | 2008/05/31 14:31 | Sententiarum | 트랙백 | 덧글(0)
2008년 04월 21일
"The History of all hitherto existing society is the history of class struggles. Freeman and slave, patrician and plebian, lord and serf, guild-master and journeyman, in a word, oppressor and oppressed stood in constant opposition to one another, carried on an uninterrupted, now hidden, now open fight." (Marx, Manifesto) "Each of them is 'cities upon cities, but no city,' as the quip goes. At the very least two, opposed to one another. A city of the poor, and a city of the rich. Each of these contains many more, and if you treat them as a single city, you will achieve nothing." (Plato, Republic 422e-423a) "Society as a whole is more and more splitting up into two great hostile camps, into two great classes directly facing each other - bourgeoisie and proletariat." (Manifesto)
"From the relation of alienated labour to private property it follows further that the emancipation of society from private property, etc, from servitude, is expressed in its political form as the emancipation of workers, not as though it is only a question of their emancipation but because in their emancipation is contained universal human emancipation." (Marx, 1844 Manuscripts) "First towards what is in its nature just, noble, self-disciplined, and everything of that sort, and then again towards what they are putting into mankind, mingling and blending institutions to produce the true human likeness based on that model which Homer called, when it appeared among humankind, a 'godlike form and likeness.'" (Republic 501b)
"What we are doing at the moment ... is not separating off a few of the inhabitants, and making them happy, but constructing a complete city, and making that happy." (Republic, 420c) "This communism as completed naturalism is humanism, as completed humanism is naturalism. It is the genuine resolution of the antagonism between man and nature and between man and man. ... The entire so-called world history is only the creation of man through human labour and the development of nature for man, he has evident and inconceivable proof of his self-creation, his own formation process." (1844 Manuscripts)
...
"Philosophers have interpreted the World in various ways, but the important thing is to change it." (Marx, Theses) "That way we shall be friends to ourselves and to the gods, both while we remain here and when we carry off our prizes afterwards, like winning athletes on their victory tour. And so, here and on the thousand-year journey we have described, let us fare well." (Republic 620c-d)
# by Noir | 2008/04/21 12:36 | Sententiarum | 트랙백 | 덧글(1)
2008년 04월 15일
인터넷에서 논어 원문을 찾아 "問"으로 검색해서, 제자들이 묻는 내용들을 골라보면 (어떻게 분류하는가에 따라 다르겠으나) 가장 많이 질문된 사항은 인(仁)으로, 총 9회에 달한다. 그 다음으로 많이 묻는 내용은 정(政)으로 8회에 달한다. (여기서 집권자들이 공자에게 묻는 부분은 생략한다. 그들이 묻는 게 별거 있겠는가..) 그 다음이 제자들이 다른 제자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혹은 자공처럼 공자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묻는 것이 7회, 예(禮)에 대한 질문이 6회, 효(孝) 4회, 군자(君子) 3회, 행(行) 3회, 사(士) 2회 등이다. 군자와 사를 같은 질문으로 본다면 5회가 된다. 제자들의 주요 관심사는 인물평을 제외하면 仁, 政, 禮의 세 가지가 지배적인 셈이다. 처음부터 꼼꼼히 읽으며 질문들을 엄밀히 정리하는 것이 좋겠으나 일단 이 정도로.
정작 공자가 가르친 내용은 어떤 것일까? 계씨 13의 공자와 아들 리(鯉)에 대한 에피소드를 보면 그가 중시한 커리큘럼은 시(詩)와 예(禮)로 보인다. 禮가 중요하다는 것은 제자들도 이해한 모양인데, 시에 대해 묻는 장면은 찾기 힘들다. 자공을 비롯한 제자들이 어쩌다 시를 언급하면 공자가 기뻐하지 않는가. (학이 15) 게다가 양화 9를 보면 "너희는 어째서 시를 공부하지 않느냐? 시는 감흥을 일으키게 하며, 살필 수 있게 하며, 어울릴 수 있게 하며, 원망할 수 있게 하며, 가까이로는 아버지를 섬기고 멀리로 군주를 섬길 수 있고,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 수 있게 한다(小子!何莫學夫詩? 詩可以興,可以觀,可以群,可以怨;邇之事父,遠之事君;多識於鳥獸草木之名)" 라며 제자들을 나무라는 장면이 있다. 공자는 제자들이 묻는 내용들 중 적지 않은 것들을 시로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계씨 13의 에피소드에서도 우선 시를 배우고 그 다음에 예를 배우라고 할 정도로 그의 커리큘럼에는 시가 중요한 요소였는데, 제자란 놈들이 익히라는 시는 안 배우고 仁, 政, 禮만 물어보니 선생 입장에선 속터졌을 것이다. 기초가 안 되어있다는 뜻이다. (특히 자장이 좀 이상한 걸 많이 묻는다.-_-)
특히 가장 많이 질문된 게 하필이면 仁이라는 게 재미있다. 사실 "공자는 이익과 운명과 인에 관해서는 말을 아꼈다(子罕言利與命與仁, 자한 1)." 공자 본인의 문제의식과, 논어를 기록한 제자들의 문제의식 사이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으리라 보이는 부분이다. 혹은 특정 제자를 잡고 그 제자와 공자의 문답만을 모아 그 제자의 문제의식을 살피고, 거기에 대한 공자의 반응을 통해 공자 본인의 문제의식을 유추해 보는 것도 가능할 지 모르나, 대개의 경우 문답의 양 자체가 너무 소략하다. "자장" 편을 통해 그 제자의 언행을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으니 자공, 자로, 염유, 증자, 자장, 자유, 자하 정도를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을 듯 하나, 이런 식으로 접근한다면 동시대 혹은 후대 역사서에 기록된 이들의 행적을 함께 봐야 할 것이다. 논어에 컨텍스트에 대한 의문은 논어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사실 그래서 재미있다. "공자님 말씀"에 감동하는 건 아니지만, 눈앞에 던져진 2천피스 직소퍼즐 같은 느낌이랄까.
# by Noir | 2008/04/15 09:51 | Sententiarum | 트랙백 | 덧글(8)
2008년 04월 12일
1.
한국어로 글을 쓸 때는 자연히 한국의 독자를 의식하게 된다. 그러니 캐나다라는, 한국인의 관심 밖에 있는 나라의 정치현실에 대해 글을 쓰지 않게 된다. 주의회 총선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캐나다는 연방국가이고, 각 개인이 피부로 느끼는 정책의 변화는 연방의회가 아니라 주의회에서 나온다. 캐나다의 주는 외교권과 군사권이 없을 뿐 하나의 준독립 국가나 다름없는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총선이 행해진 건 한 달도 더 지난 일이고, 이제야 어느 정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어수선한 글이나마 쓸 수 있을 것 같다. 영어로 쓴들 어디 발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다고 해도 싫으면 떠나라는 식의 반응 외에는 기대하기 힘들다.
2.
알버타 주의회 총선이 행해진 것은 3월 3일이다. 나는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있었고, 신문의 정치관련 기사도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2년 전 행해진 2006년 연방의회 총선에서 선출된 알버타주 의원 28명은 전원 보수당원이었고, 그 사이 별다른 정치적 이슈도, 쟁점도 없었으니 진보보수당(당 이름부터 짜증난다)의 승리는 올해도 예정된 것이었다. 알버타에 보수당이 최초로 집권한 것은 1971년, 이후 보수당은 단 한 번도 내각을 내준 적이 없이 11회째 연속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1971년 당시 그들은 75석 중 49석을 차지하였고, 2008년 현재 83석 중 72석을 차지하고 있다. 자유당은 16석에서 9석으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고 일종의 사민주의 정당인 신민당은 4석에서 2석으로 줄었다. 71년 이전에도 사회신용조합이 보수정당으로 출마해 비슷한 지지율을 가져오다가 보수당으로 넘어갔음을 생각하면 이 지역의 보수 지배는 그 역사가 길다.
알버타에 보수가 거의 한 세기에 다다른 지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을 단순히 시골 사람들의 보수성이라고 설명하면 쉽게 끝난다. 실제로 알버타의 도시화는 상당히 급격히 행해졌다. 에드먼튼과 캘거리를 중심으로 한 도시지역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며 도시와 농촌의 인구격차가 커지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말, 70년대 초부터의 일이고 이 시점을 전후해서 사회신용조합에서 보수당으로 지지가 전환된다. 사회신용조합 이전, 20년대에서 30년대까지 알버타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해 온 정당은 "농민연합"이다. 그들의 보수적인 지지가 사회신용조합으로, 다시 보수당으로 넘어가게 된 것은 그들의 목가적 보수성이 유지된 결과라고 말하면 쉬울 지 모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특이한 시점이 있다. 80년대 후반, 1986년과 1989년 양차에 걸친 총선에서 신민당은 30%대의 지지율을 올리며 보수당에 대한 최초의 도전을 걸었다. 이 시기 신민당의 지지율은 캐나다 내에서도 유래가 없는 것이어서, "붉은 알버타"라는 별명이 생겨나기도 했을 정도이다. 그 이전, 1982년 총선에서는 79석 중 보수당이 75석을 차지하는 경이로운 승리를 거두었으나, 신민당은 이 해 2석으로 최초로 "공식야당"이 된다. (그 이전의 제1야당은 신용조합이었다.) 신민당은 증가한 도시노동자를 겨냥해 자기들의 존재를 강하게 어필하는데 성공, 다음 총선에서 30%대의 지지율을 보이며 보수에 대한 최초의 견제세력이 된다. 그러나 1993년 총선에서 신민당은 의석확보에 실패하고, 보수당 51석에 자유당 32석으로 의회가 갈라지게 된다.
당시 캐나다 전국은 경제적으로 슬럼프 상태였으며, 신민당은 막 결집되기 시작한 노동자들의 지지를 일시적으로 얻는 데 성공했으나 그에 대한 어떤 실질적인 대안도 내놓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보수를 찍기는 싫은 사람들이 자유당에 표를 던졌을 뿐이다. 물론 신민당이 30%에 가까운 지지율을 보였다고 하나 나머지 70%가 보수였기 때문에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약할 수 밖에 없었고, 경제에 한해서는 주 단위에서 어떠한 정책을 시행하든 누수현상을 피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신민당은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3.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로 들어서며 나타나는 새로운 변화는 정규직의 감소이다. 이 지역의 저임금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 전환되었으며, 석유가 나는 한 일자리를 새로 구할 수 있다는 현실은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아무래도 좋다는 결과로 이어진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를 조직하지 않으며, 도시화가 더욱 추진되어 도시인구가 계속해서 성장, 노동자 인구가 증가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신민당은 이 노조 밖에 있는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 실패한다. 이 현상은 2000년대에 더욱 두드러져, 2001년 당시 인구 70만을 밑돌던 에드먼튼은 현재 1백만을 넘은 상태이다. 여전히 게속되는 농촌 인구의 도시 이주에 석유 특수로 호황을 맞고 있는 알버타에 일자리를 찾아 넘어온 타 주 주민들이 합세한 결과이다. 신민당은 여전히 이들을 계급적으로 조직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인구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되면 자연히 주택문제가 발생한다. 시외로 나가는 고속도로를 타면 외곽지역을 따라 게속해서 주택 및 월마트와 같은 대형도매상 건물이 지어지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이 신축되는 건물들은 전부 단독이다. 이 지역까지는 버스도 연결되어 있지 않고 있더라도 배차간격이 최저 15분, 30분인데다 시내까지 가려면 수차례 갈아타야 하는 덕분에 시내까지 아무리 빨라도 2시간에서 3시간 정도가 소모된다. 즉 여기에 살려면 주택만이 아니라 차를 소유할 수 있는 정도의 자산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이 빠르게 팔려나가는 것은 융자를 얻기 쉬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단독주택들은 아무리 대규모로 건설해도 저렇게 빠르게 증가하는 인구와 주택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다. 2001년 당시 월세가 900이었던 4인가족이 생활할 수 있는 연립주택이 현재 2000에 가깝게 올라 있고, 월세만이 아니라 주택가격 또한 마찬가지로 대폭 상승했기 때문에 이미 주택을 보유하고 있던 자들은 이 집값이 떨어지길 원치 않고, 나중에 구입한 사람들은 집값이 떨어지면 손해를 본 셈이 되니 마찬가지로 현행 수준을 유지하기를 원한다. 결과적으로 주택란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당 정권 하에서 보다 빠르게 주택란을 해결할 수 있는 아파트나 연립은 건설되지 않는다. 새롭게 주택을 마련한 사람들은 지금까지 무슨 당을 지지해 왔던 집값이 걸린 이상 보수당에 투표한다.
보통 월세를 사는 사람들은 그렇다면 어떠한가? 석유로 인한 호황은 고용을 대량으로 창출해 냈으며, 이는 일자리 부족현상으로까지 이어졌다. 2000년대 초 에드먼튼의 맥도날드에서 버거를 뒤집는 사람이 6불 남짓한 시급을 받았던 것이 현재는 최소 9불, 야간근무의 경우 11에서 12불까지도 바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는 주택 등에서 보여지는 물가 상승과 비교하면 실질적으로 조삼모사나 다름없기는 하지만 당장 손에 쥐어지는 돈이 늘었다는 이유로 부유해진 듯한 착각, 즉 현금의 환상money illusion을 초래한다. 그리고 주택을 중심으로 한 물가의 상승은 일자리를 찾아 알버타로 넘어온 타지방 사람들 탓으로 돌려진다. 그러면서 다시 보수로 뭉친다. 지난 총선 보수당의 슬로건은 "알버타인을 위하여For Albertans"였다.
4.
에드먼튼 시내에 있는 가장 큰 서점인 Whyte Avenue Chapter's에서는 《공산당선언》을 살 수 없다. 아무리 보수당 절대독재라 해도 검열을 하는 건 아니다. 검열은 위험한 대상이라고 생각할 때만 하는 것이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 저런 책들을 굳이 검열할 필요는 없다. 단지 수요가 없기 때문에 공급도 없는 것이다. 재작년에 동부로 여행하며 토론토나 몬트리올 등의 도시에서는 《공산당선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으며, 내가 몬트리올에서 구입한 불어판 《공산당선언》은 한적한 주택지의 동네서점에서 구입한 것이었다. 《공산당선언》은 어찌됐건 좌파 서적들 중에서는 가장 고전에 해당하며 널리 읽히는 책 중 하나이며, 이것을 서점에서 얼마나 쉽게 구할 수 있는가에 따라 그 지역의 보수 헤게모니를 판단하는 척도가 될 수도 있겠다.
그에 비해 자기계발 서적이 한 코너를 점령하고 있지 않은 서점은 없다. (꼭 알버타만은 아니지만서도) 이 책들은 말 그대로 개인이 스스로를 발전시켜 성공할 수 있게 해 주는 약속을 담은 현대판 복음서이다. 그러나 실제로 본인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굳이 이런 책을 읽을 것 같지는 않다. 서점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발걸음은 자기계발에서 비지니스로 옮겨가기 마련이고, 자기계발에서 어정대는 인간들은 여전히 성공을 못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성공을 못 하고 있다는 건 그저 그런, 별볼일 없는 임금노동자이면서 미래에는 스스로 창업을 하거나 관리직에 동참하거나 하는 식으로 노동자에서 자본가로의 신분상승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개중 성실한 자들은 비지니스, 경제경영 서적까지 읽으며 예습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 중 정말로 성공하는 사람은 소수일 것이다. 그 책들로부터 그들이 얻는 것은 자본가가 된 듯한 망상, 혹은 미래 자본가가 된 자신에 대한 꿈일 것이다.
그들에게 자본가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심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겠으나 끊임없이 대중들 속에서 욕망을 창출해 내는 원동력으로서 광고와 마케팅을 빼놓을 수 없다. 과거에는 필요하지도 않았던 물건에 대한 욕망을 창출하고, 그것이 확대되면 정말로 하나쯤 있어야 하는 것처럼 유행을 만들어내게 된다. 대표적으로 아이포드 같은 것이 그러하다.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은 소비사회에서 대중의 일부로, 다시 소비자로 전락하게 되며 더 이상 그들의 욕구조차도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더 많은 것을 지를 수 있게 되기 위해 돈을 벌고 싶어하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서 성공하고 싶어한다. 스스로는 자유로운 인간이라 생각할 지 모르지만, 자신의 행위를 규정하는 자기원인을 찾지 못하고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이상 잘 길들여진 가축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은 다시 교육에 반영된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캐나다사 전반을, 2학년 때 근대사회 형성부터 프랑스 혁명부터 볼셰비키 혁명까지, 3학년 때 20세기 세계사를 사회시간에 배웠다. 나는 알버타에서 고등학교 때 역사를 배운 마지막 세대에 속하는데, 나보다 2학년 아래인 동생은 그 사이 커리큘럼이 바뀌어서 고등학교 내내 세계사도 국사(캐나다사)도 배우지 못했다. 대학도 마찬가지여서 인문학부 교양필수도 영국이나 미국, 유럽을 이야기하는 "남의 나라"이야기에 불과한 것을 읊을 뿐이다. 지금 발 딛고 있는 캐나다라는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재된 상황에서는 이에 대한 어떤 비판적 사고도 생겨날 수 없다. 그러니 그렇게 대학을 졸업한 그들은 많이 배운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의 일상은 부르주아 헤게모니에 철저히 점령당한 프롤레타리아의 그것에 불과하게 된다. 보수 자본주의 헤게모니는 시민이 대중의 일부로, 다시 소비자로 환원되어 끊임없이 먹고 싸는 기계가 될 수 있게끔 하는 우민화를 필요로 한다. 진지전을 하든 뭘 하든 우선 이 일상을 이겨내는 힘이 필요하다.
5.
나는 종종 "너무 원론적인 레벨에서만 말을 한다" 혹은 "쓸데없이 시니컬하다"는 핀잔을 듣는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나를 둘러싼 정치적 현실은 캐나다와 한국이다. 나는 현재 캐나다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또 동시에 아직 영주권자 신분인 관계로 한국 여권을 유지하고 있다. 내 주위에 견고하게 펼쳐진 보수에 파고들어 흠집을 내 볼 만한 재주는 커녕 근대 시민사회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참정권을 한 번도 행사해 보지 못한 사람인데 당연히 시니컬해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캐나다든 한국이든 인터넷 뉴스를 별로 챙겨보지도 않고 "현대사" 수준으로만 알고 있으니 구체적인 이슈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말이 없기도 하다. 내게 있어 정치현실은 내가 참여할 수 없는 것인데, 그에 대해 열심히 읽는들 그게 무의미한 정보의 더미 이상 무엇이겠는가.
쓸데없는 말이 너무 길어졌다.
# by Noir | 2008/04/12 23:22 | Monologue | 트랙백 | 덧글(0)
2008년 04월 11일
cf. Politik als Beruf, Max Weber.
source
# by Noir | 2008/04/11 03:19 | Monologue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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