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놉티콘

『파놉티콘: 감시의 집』은 『도덕 및 입법 원리 서설』에 비하면 상당히 읽기가 수월한 책이다. 벨라루스에서 보내진 21편의편지로 구성된 최초의 『파놉티콘』은 이 아이디어를 떠올린 벤담이 "삘"을 받아서 써내려간 것이라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다.후에 여기에 대한 보완 및 세부적인 내용들을 벤담다운 디테일로 서술해 나가지만 거기까지 읽을 필요는 없으리라 본다. 감시의 집의원리 및 목적을 이해하는 데는 21편의 편지로 충분하다. 『서설』 역시 초반에 효용이론을 펼쳐나가는 부분은 주의깊게 읽을 만하지만 뒤로 갈수록 그의 편집증적인(혹은 법학자다운) 디테일에 쓰러지게 된다.

파놉티콘은 닫힌 세계이다. 중앙의 감시탑을 중심으로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원형으로 세워진 각 방에는 거대한 창문이감시탑 방향으로 붙어 있어 그 안의 모든 활동을 중앙으로부터 감시할 수 있으며, 각 수감자들의 활동영역은 그 안으로 한정된다.즉 누구도 옆방에 있는 사람과 의사소통할 수 없다. 파놉티콘은 기본적으로 형무소Penitentiary를 염두해 두고 만들어진 듯하나 그 외에 보호감찰Safe-custody, 공장, 정신병원Madhouse, 병원, 학교를 비롯한 "집단"을 다루는 모든제도적인 장치에 응용될 수 있다. 파놉티콘은 건축양식을 통해 그 안에 들어오는 사람의 행동을 선도하며, 감시의 가능성을의식함으로서 스스로 행동을 고치게끔 한다. 15번째 편지에서 벤담은 파놉티콘 형무소 수감자들에게 노동을 부여할 때 파놉티콘은 그자체로 이윤을 창출하는 자급자족적 세계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가장 효과적이며 경제적인 집단 통제 체제이며, 단순한 감옥의설계를 넘어서는 것이 된다.

『파놉티콘』의 저자는 학교를 다루는 21번째 편지에서 "루소도 그의 소피아를 이와 같은 학교에 기꺼이 입학시킬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21번째 편지는 가장 길면서도 파놉티콘이 단순한 감옥을 넘어 사회 개량의 도구가 되는 핵심적인 논의를담고 있다. 이 감시의 집을 통괄하는 기본 원리는 효율성과 경제성이다. 벤담은 이러한 파놉티콘 구조가 피감시자들을 궁극적으로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들이 행복하다면 "군인이라 부르든, 수사라 부르든, 기계라 부르든 신경쓰지 않는다"라고말한다. 피감시자들이 파놉티콘 내에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사생활이 없어야 하며, 짐작일 뿐이지만 벤담에게도 인간의 공적영역과 사적 영역이 구분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루소나 칸트의 인간 역시 철저히 공적 영역에서만 움직인다. "사적인인간"은 언제 나타나는 것일까?)

최근 파놉티콘 개념을 정보화 사회의 개인정보 문제와 관련해서 비유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푸코의책을 읽은 기억이 없어 그가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파놉티콘은 사회적 제도 이전에 건축이라는 것을 명심해야할 필요가 있다. 벤담은 파놉티콘은 반드시 원형이어야 하며, 이러한 공학적인 기반 위에서만 완전한 감시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주장하고 있다. 인터넷 상의 검열이나 개인정보 유출 등의 문제는 현재 인터넷상의 정보를 전체 검열할 수 있는 기관도, 방법도없으며 모든 인터넷 사용자가 동일한 확률로 감시받고 있음을 느끼게 할 공학적 기반이 없는 한 파놉티콘을 비유로 든다는 것은억지에 불과하다. 파놉티콘은 닫힌 세계일 때에만 파놉티콘일 수 있다.

* 이 글은 1787년 영어로 쓰여진 최초의 21편에 대한 것입니다. 한국에 번역되어 나온 『파놉티콘』은 이후에 나온 프랑스어본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내용이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by Noir | 2008/02/17 20:53 | Sententiarum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Linked at 누구의 것도 아닌 집—푸른 문.. at 2008/05/08 00:07

... 능합니다.”라고 말한다.   현대? "현대는 신생대 제4기 간빙기 철기시대에 속하는 시대입니다."   “『파놉티콘』의 저자는 학교를 다루는 21번째 편지에서 "루소도 그의 소피아를 이와 같은 학교에 기꺼이 입학시킬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ほぼテキストブラウザ (텍스트브라우저): 웹브라우징 도중에 CtrL+Tab 누르면 진짜 메모 ... more

Commented by 비안네 at 2008/02/19 09:56
소속원들이 '완벽하게 감시당한다'하고 믿게 할 때에야 이상적 체계를 이룰 수 있다고 하였으니, 벤담도 참 가슴이 메말랐나 봐요. 만약 벤담이 제 옆에 있다면 무녀복 모에의 길을 가르쳐주겠어요. (껄껄)
Commented by Noir at 2008/02/19 10:01
KIN (...)
Commented by 소스확보 at 2008/06/16 13:12
인터넷을 닫힌 세계로 만들려고 하는 움직임들이 있죠.

열린 세계를 일부러 닫힌 세계로 만들려는 작업 자체가 억지스러운데,
그렇게 해서 닫힌 세계를 다시 열린 세계로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으니 얼마나 소란스러울까 싶군요.

열려 있다 닫혀 있다는 고정불변이 아니라, 결국 권력의 의지에 따른 것이겠죠.
Commented by Noir at 2008/06/16 23:36
소스확보/ 그렇게 닫힌 세계로 만들기엔 기술적으로 무리이리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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