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1월 15일
고전읽기의 두 가지 방법
고전읽기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고전을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에 따라 그 메시지를 현대적인 배경 속에서 읽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전도 보편적이지 못한, 고전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 안에 국한시켜 그 맥락 속에서 당시에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를 따지며 읽는 것이다. 편의상 전자를 ‘고전적 독법’, 후자를 ‘역사적 독법’이라 부르겠다.
고전을 고전적으로 읽는 태도는 참으로 고전적인 것이다. 이를테면 경전이라 분류되는 책들은 신자들에게 보편적인 진리를 담은 것으로 간주되어 현대에 그대로 적용 가능한 것인 양 읽힌다. 그게 어려우면 해석을 뒤틀어서라도 그렇게 한다. 심지어 그 텍스트를 비난하는 경우에도 그렇게 하는데, 이를테면 주자학자들이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의 설”을 사문난적이라 비난한 것은 이들의 설을 춘추시대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가 아니라 보편적인 메시지로 간주하고 시도 때도 없이 항상 비판해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안티경전인 셈인데,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도 이들의 보편성을 인정하는 미묘한 자기모순을 포함하고 있다. 고전 텍스트를 이렇게 읽을 때 독자는 그 고전과 하나가 되어 그 고전의 메시지를 그대로 체화시켜 즉자적으로 읽거나, 그것과 영원히 싸울 것을 요구받는다.
고전을 역사적으로 읽는 태도는 그리 오래되지 않다. 이는 서구 근대의 산물이다. 중세적 세계로부터 단절되고 역사적 의식이 발흥함에 따라 생겨난 태도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주요 테제 가운데 하나였던 “sola scriptura"는 성경 자체에 대한 연구를 촉진시켜 역설적으로 성서의 문헌비평학적 연구를 탄생시켰고, 그저 성서를 올바르게 이해하고자 했던 이들이 반대로 성서의 권위를 많이 훼손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적 고전 읽기는 고전을 항상 대자적으로 읽는 결과를 낳는다. 심하면 그 고전을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독자는 변화하지 않으며 단순히 지식을 늘리고 ‘읽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 딜레탕트적인 혹은 학문을 위한 학문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고전적 독법은 독자에게 보편적 진리와 실천의 규범을 전해준다. 기독교인들이 십계명을 따르는 것이나, 유교적 사회에서 삼강오륜을 따르는 것 등은 그 규범들이 생겨난 배경과 무관하게 현실적인 실천 강령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적 독법은 매력적이다. 깊이 생각할 것 없이 그냥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역사적 독법은 독자에게 이러한 고전의 성립 배경과 시대적 상황을 알려주며 이 고전이 정말로 현대적으로 의미가 있는지, 있다면 어떠한 것인지, 이를 어떻게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반성적 사유의 계기를 마련해 준다. 그러나 이렇게 읽고 보면 ‘읽었다’는 것 뿐 내가 무엇을 실천해야 할 지 모를 수 있다. 21세기에 《일리아스》를 읽고 대체 뭘 실천하겠는가. 청동칼 들고 트로이에 가야 하나? 도무지 이것을 21세기 현실에 적용할 방법이 없으니 지식을 위한 지식에서 끝나게 된다. 게다가 이렇게 따져가며 읽는 작업은 피곤하기 그지없다.
고전적 독법과 역사적 독법은 고전을 대하는 태도의 양극단이다. 래디컬하게 고전적으로 읽으면 도그마에 빠지게 되고, 래디컬하게 역사적으로 읽으면 실천과 무관해진다. 도그마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역사적인 태도를 버릴 수 없지만, 그래도 그 고전 텍스트에 정말로 보편적이거나 적어도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결국 중용(中庸)인 셈인데, 중용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이미 《중용》이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고전적으로 읽는다는 것 아닐까.
관련: 역사적 고전독법
# by | 2008/01/15 02:03 | Plastik | 트랙백(1) | 핑백(2) | 덧글(1)




제목 : 고전, 어떻게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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