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 공부한다고 정작 책을 안 읽다 보니 머리가 멍해지는 것 같아 다시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중세문학을 다시 공부해 볼까 하며 집어들고 읽다가 포스팅이라도 하면 그만두지 않고 계속 읽게 될 것 같다는 이유로 포스팅 시작합니다. 《이섬브라스 경》, 13-14세기의 후기 중세영어 작품으로, 당대에 상당히 유행했던 작품으로, 전체 771행의 짧은 작품인데다 중세영어지만 상대적으로 후대라 해석이 심히 까탈스럽진 않기 때문에, 이걸로 시작해 봅니다. 성 에우스타키우스(Sanctus Eustachius, St. Eustace)의 이야기를 베이스로 기사도 작품으로 각색되었습니다.
일단 원작에 해당하는 에우스타키우스 이야기.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 시절의 군인으로 기독교로 개종한 뒤 얼마 안 있어 그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재산을 잃고 아내도 납치되고 애들도 짐승에 물려가는 (《욥기》와 비슷한 구성) 고통을 겪으며 한탄은 해도 하느님*을 원망하지는 않다가 재산을 다시 얻고 가족과 만나고 명예를 되찾았지만 하드리아누스 대에 순교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놓고 보면 별로 특이할 것 없는 순교성인 이야기이긴 한데, 그렇게 따지면 할리우드 영화도 특이할 것 없기는 마찬가지죠. 어차피 한 시대에 사람들이 즐기는 이야기는 거기서 거기인 고만고만한 것들이니까.
*제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편의상 이 단어를 쓰겠습니다.
네, 어쨌건 서사시의 주인공은 훌륭하고 유능하며 잘생기기까지 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건 거의 보편적인 법칙이기 때문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섬브라스도 기사에 영주로 명예와 재물이 풍족하다 보니 그러한 인간들이 흔히 겪는 죄, 즉 자만hubris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어느 날 숲속에서 계시를 받게 됩니다. 원래 숲은 신내림 받기 좋은 곳이죠.
에우스타키우스와 달리 이섬브라스의 경우 그냥 믿음을 시험하는 게 아니라 오만의 죄를 이미 지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무슨 오만한 행위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gold and fee"가 오만을 불러왔다고 합니다) 그에 대한 벌을 받는 것. 그냥 믿음을 시험하는 거라면 성인전이 되었겠지만 어쨌건 지은 죄기 때문에 통속문학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젊어서 비참할 것인가 노년에 비참할 것인가를 고르라는 어려운 질문에 이섬브라스는 그냥 젊고 몸 성할 때 고생하고 노년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숲에서 나오자마자 영지가 털리고 식솔들이 죽고 아내와 세 아들만이 헐벗고 비참한 몰골로 등장합니다. 스토리 급전개, 부자 영주가 거지가 되어 떠돌기 시작합니다.
앞으로 이섬브라스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한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구걸을 하며 떠도는 신세로 전락. 큰아들과 둘째아들은 어디선가 나타난 사자(유럽에?)에 물려 사라져 졸지에 이산가족이 됩니다. 그러다 기독교 나라를 침략하러 오는 이교도 술탄의 군대와 마주하게 됩니다. 술탄의 부하들은 이교도이긴 해도 보는 눈은 있기 때문에 이섬브라스와 그 아내가 본래 훌륭한 사람이었음을 알아보고 술탄께 직언하여 저들을 거두고자 하며, 술탄도 서사시의 주인공을 알아보는 인류보편의 심미안을 지니고 있어 그를 등용하고자 하나 이섬브라스는 기독교 나라와 전쟁을 할 수는 없다고 우기며 튕깁니다. 이제 그 아내에 눈을 돌리는 술탄.
신하가 되는 것도 싫다, 아내도 내주기 싫다, 열받은 이에 술탄은 아내를 빼앗고 매질해서 내보냅니다. 아내는 마지막으로 이섬브라스와 단둘이 이야기할 때 금반지를 정표로 건네주며 술탄을 죽이고자 한다면 언제든지 협력하겠다고 합니다. (대단한 아내 아닐 수 없습니다.) 원래 서사시 주인공의 아내는 다른 남자랑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정조를 잃는 법은 없기 때문에, 술탄은 강제로 빼앗은 남의 아내를 손도 안 대고 그대로 자기 나라로 돌려보내 여왕으로 만들어 주고 전쟁을 계속합니다. 이 정도면 그나마 양반인 것이, 오랫동안 남의 아내로 함께 지내던 여자가 사실은 정조를 지켰다고 나오는 작품도 있는 걸 보면 훨씬 현실적이군요. 그리고 이섬브라스의 마지막 남은 막내아들이 뜬금없이 등장하는 유니콘에 물려 사라지고 (유니콘은 사실 맹수였던 겁니다) 다시 거지 신세가 됩니다.
여기서 “쟁기”라 함은 밥벌이 도구의 대명사. 농경사회다운 표현법이지요. 이섬브라스는 돌을 나르는 대장장이 세계의 밑바닥 일부터 시작하여 불을 다루게 되고 시간이 흐르며 한 사람의 대장장이가 되어 기사치고는 예외적이게도 스스로 밥벌이를 하게 됩니다. 작품에선 이것을 놓고 그의 "치욕schame"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원래 기사는 이런 일 하는 게 아닌데 대장장이 세계에서 밑바닥으로 내려갔다는 건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다는 말이지요. 기사도 문학에서 주인공이 이런 서민적인 일에 잠시 종사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굉장히 드뭅니다. (일례로《덴마크인 하벨락Havelok the Dane》의 주인공은 요리사 견습으로 일하다가 어느덧 왕이 됩니다.) 이런 작품만 놓고 보면 신분이동도 가능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중세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고, 굳이 치욕이라고까지 표현한 걸 보면 그 반대였겠지만 대중들은 높은 기사가 자기들 레벨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신분상승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대리만족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듭니다.
2편에 계속.
일단 원작에 해당하는 에우스타키우스 이야기.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 시절의 군인으로 기독교로 개종한 뒤 얼마 안 있어 그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재산을 잃고 아내도 납치되고 애들도 짐승에 물려가는 (《욥기》와 비슷한 구성) 고통을 겪으며 한탄은 해도 하느님*을 원망하지는 않다가 재산을 다시 얻고 가족과 만나고 명예를 되찾았지만 하드리아누스 대에 순교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놓고 보면 별로 특이할 것 없는 순교성인 이야기이긴 한데, 그렇게 따지면 할리우드 영화도 특이할 것 없기는 마찬가지죠. 어차피 한 시대에 사람들이 즐기는 이야기는 거기서 거기인 고만고만한 것들이니까.
*제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편의상 이 단어를 쓰겠습니다.
Hende in halle and ye wole her
Off eldres that before us wer
That lyfede in are thede.
Jhesu Cryst, hevene kynge,
Geve hem alle hys blessyng
And hevene unto oure mede.
I wold yow telle off a knyght
That was bothe hardy and wyght
And doughty man of dede.
Hys name was callyd Sere Ysumbras;
So doughty a knyght as he was
There levyd non in lede.
(1-12)
훌륭한 여러분이여, 그대들은 만약 우리 이전의 옛날에 살던 선인들에 대해 듣길 원하는가. 예수 그리스도, 하늘의 임금님, 그들 모두에게 축복을 주시고 우리의 보상이 하늘에 있기를. 나 이제 그대들에게 한 기사에 대해 말하겠으니, 그는 건장하고 유능했으며 그 행위에서는 용감한 자였다. 그는 이섬브라스 경이라 불리었으니, 사람들 사이에 그와 같이 용감한 기사는 더 없었다.
네, 어쨌건 서사시의 주인공은 훌륭하고 유능하며 잘생기기까지 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건 거의 보편적인 법칙이기 때문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섬브라스도 기사에 영주로 명예와 재물이 풍족하다 보니 그러한 인간들이 흔히 겪는 죄, 즉 자만hubris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어느 날 숲속에서 계시를 받게 됩니다. 원래 숲은 신내림 받기 좋은 곳이죠.
"Welcome Syr Isumbras,
Thow haste forgete what thou was
For pryde of golde and fee.
The kynge of hevenn the gretheth so:
In yowthe or elde thou schall be wo,
Chese whedur hyt shall be."
(43-48)
“어서 오시게, 이섬브라스 경. 그대는 황금과 재물에 대한 자만으로 그대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렸네. 하늘의 임금님께서 그대를 이와 같이 맞이하니, 그대는 청년기가 아니면 노년기에 비참하게 될 것이네. 어찌 될 것인가를 선택하게.”
에우스타키우스와 달리 이섬브라스의 경우 그냥 믿음을 시험하는 게 아니라 오만의 죄를 이미 지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무슨 오만한 행위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gold and fee"가 오만을 불러왔다고 합니다) 그에 대한 벌을 받는 것. 그냥 믿음을 시험하는 거라면 성인전이 되었겠지만 어쨌건 지은 죄기 때문에 통속문학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젊어서 비참할 것인가 노년에 비참할 것인가를 고르라는 어려운 질문에 이섬브라스는 그냥 젊고 몸 성할 때 고생하고 노년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숲에서 나오자마자 영지가 털리고 식솔들이 죽고 아내와 세 아들만이 헐벗고 비참한 몰골로 등장합니다. 스토리 급전개, 부자 영주가 거지가 되어 떠돌기 시작합니다.
For they bare with hem nothynge
That longed to here spendynge,
Nother golde nor fee,
But for to begge here mete
Where they myghte ony gete,
For love of seynt charyté.
(145-150)
“그들은 그들을 위해 쓸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지니지 못했으니, 금도 재물도 없었으며 그들의 음식은 오직 신성한 자비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만 구걸할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 이섬브라스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한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구걸을 하며 떠도는 신세로 전락. 큰아들과 둘째아들은 어디선가 나타난 사자(유럽에?)에 물려 사라져 졸지에 이산가족이 됩니다. 그러다 기독교 나라를 침략하러 오는 이교도 술탄의 군대와 마주하게 됩니다. 술탄의 부하들은 이교도이긴 해도 보는 눈은 있기 때문에 이섬브라스와 그 아내가 본래 훌륭한 사람이었음을 알아보고 술탄께 직언하여 저들을 거두고자 하며, 술탄도 서사시의 주인공을 알아보는 인류보편의 심미안을 지니고 있어 그를 등용하고자 하나 이섬브라스는 기독교 나라와 전쟁을 할 수는 없다고 우기며 튕깁니다. 이제 그 아내에 눈을 돌리는 술탄.
"Man, I wold geve the gold and fee,
And thou that wymman wole selle me,
More than thou can nevene.
I wole the geve an hundryd pound
Off penyys that be hool and round
And ryche robes sevene.
Sche schal be qwene of my lond,
And alle men bowe unto her hond
And non withstonde her stevene."
Ser Ysumbras sayde, "Nay!
My wyff I wole nought selle away,
Though ye me for her sloo.
I weddyd her in Goddys lay
To holde here to myn endyng day,
Bothe for wele or woo."
(271-285)
“사내여, 그대가 저 여인을 내게 팔기로 하겠다면 그대가 다 말로 할 수 없을 만큼의 금과 재물을 주겠네. 또 자네에게 온전하고 둥근 페니 1백 파운드와 일곱 벌의 호사스런 옷을 주겠네. 그녀는 내 땅의 영왕이 될 것이며, 모든 자들의 그녀의 손 앞에 절하게 되며 그녀의 명을 어길 수 없게 될 것일세.”
이섬브라스 경이 말했다. “안 되오! 그대가 그녀 때문에 나를 죽인다고 하더라도 내 아내를 팔지 않을 것이오. 난 그녀와 주님의 법에 따라 결혼했으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내가 다하는 날까지 그녀와 함께 할 것이오.”
신하가 되는 것도 싫다, 아내도 내주기 싫다, 열받은 이에 술탄은 아내를 빼앗고 매질해서 내보냅니다. 아내는 마지막으로 이섬브라스와 단둘이 이야기할 때 금반지를 정표로 건네주며 술탄을 죽이고자 한다면 언제든지 협력하겠다고 합니다. (대단한 아내 아닐 수 없습니다.) 원래 서사시 주인공의 아내는 다른 남자랑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정조를 잃는 법은 없기 때문에, 술탄은 강제로 빼앗은 남의 아내를 손도 안 대고 그대로 자기 나라로 돌려보내 여왕으로 만들어 주고 전쟁을 계속합니다. 이 정도면 그나마 양반인 것이, 오랫동안 남의 아내로 함께 지내던 여자가 사실은 정조를 지켰다고 나오는 작품도 있는 걸 보면 훨씬 현실적이군요. 그리고 이섬브라스의 마지막 남은 막내아들이 뜬금없이 등장하는 유니콘에 물려 사라지고 (유니콘은 사실 맹수였던 겁니다) 다시 거지 신세가 됩니다.
As he wente be a lowe,
Smethy-men herde he blowe,
A grete fyre sawe he glowe.
He askyd hem mete par charyté,
They bad hym swynke for "so doo wee,
We have non othir plowe."
Thenne answers the knyght agayn,
"For mete wolde I swynke fayn."
(376-383)
그가 언덕 아래로 내려가자 대장장이들이 풀무질하는 소리를 들었고, 커다란 불이 빛나는 것을 보았다. 그가 자비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음식을 청하니, 그들은 그에게 일을 청하며 “우리도 그러합니다. 우리도 다른 쟁기가 없습니다.” 이에 기사가 다시 답하니, “음식을 위해 잘 일하겠습니다.”
여기서 “쟁기”라 함은 밥벌이 도구의 대명사. 농경사회다운 표현법이지요. 이섬브라스는 돌을 나르는 대장장이 세계의 밑바닥 일부터 시작하여 불을 다루게 되고 시간이 흐르며 한 사람의 대장장이가 되어 기사치고는 예외적이게도 스스로 밥벌이를 하게 됩니다. 작품에선 이것을 놓고 그의 "치욕schame"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원래 기사는 이런 일 하는 게 아닌데 대장장이 세계에서 밑바닥으로 내려갔다는 건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다는 말이지요. 기사도 문학에서 주인공이 이런 서민적인 일에 잠시 종사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굉장히 드뭅니다. (일례로《덴마크인 하벨락Havelok the Dane》의 주인공은 요리사 견습으로 일하다가 어느덧 왕이 됩니다.) 이런 작품만 놓고 보면 신분이동도 가능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중세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고, 굳이 치욕이라고까지 표현한 걸 보면 그 반대였겠지만 대중들은 높은 기사가 자기들 레벨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신분상승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대리만족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듭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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