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언제까지 있을 거냐고 물으신 분들에게: 한국 체류예정기간은 언제까지 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몇달간 단기방문은 아니고 현재 합법체류중인 외국인노동자로 있습니다.

이글루스 언제까지 방치해 둘거냐고 묻는 분들에게: 연말쯤에 재가동할 예정입니다만 글이 많이 쌓여있어서 재편하는 것보다 폭파시키고 새로 만드는 걸 고려중입니다. 현재 주소는 올해까지만 유지합니다. 살다보면 1년쯤 블로그 쉴 수도 있는 거죠.


by Noir | 2009/08/31 15:10 | Monologue | 트랙백 | 덧글(2)

News


Sub Rosa will be landing on Incheon Int'l Airport on Monday 13 July. The first plan was to land on 5th instead, but it changed due to certain circumstances (I hope I didn't make anyone worrying about it).

by Noir | 2009/07/07 04:51 | Monologue | 트랙백 | 덧글(11)

These days.


1. I'm not yet dead, just busier.

2. My laptop died, and I am yet to decide which model I should buy.

3. I'm considering either closing and removing or resetting this blog.

by Noir | 2009/03/27 09:36 | Monologue | 트랙백 | 덧글(3)

소설책 두 권.

아멜리 노통Amélie Nothomb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튜브의 형이상학(Métaphysique des tubes)》


자신의 0살에서 3살까지를 다룬 자서전적 소설. ...이라고 하는데, 그 때의 기억이 남아있다는 거 자체가 가능한가? 난 3살은 고사하고 8, 9세 이전의 기억도 흐릿하다 못해 막연한 이미지만 남아있고, 어떤 에피소드를 기억해 낼 능력은 없다. 내가 온전히 기억해낼 수 있는 기억은 적어도 초등학교 4학년, 그러니까 10세 정도부터이다. 내 에피소드 기억이 평균 이하인 건 알고 있으니 내 기준에서 말할 순 없겠지만, 0세부터 3살까지라... 부모의 증언이나 다른 기록들을 참고했겠지만, 그 아기 화자가 사용하는 언어는 온전히 성인의 언어이다. 즉 노통은 유아의 관점에서 글을 쓴 게 아니라 성인의 관점에서 회고하며, 자신의 유아기를 재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의 기억력은 그리 믿을만한 게 되지 못하지. 이런 짓을 해 버리면 자신의 기억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픽션이 기억을 대체해 버리게 된다.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의 픽션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일까. 일본에서 나고 자라던 두살 반 아멜리는 스스로를 일본인(Japonaise)로 규정하는데, 과연 그게 두살 반의 결정일까 아니면 성인 아멜리의 자아정체성 규정일까?

다이 시지에Dai Sijie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Balzac et la Petite Tailleuse chinoise)》


문화혁명과 재교육을 경험한 중국인이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쓴 소설. 샨사의 《천안문》과 겹치지 않을까? 중국인의 펜이 프랑스어로 중국을 비판하는 소설을 쓴다면 프랑스의 잘나신 분들이 좋아하겠지. 소설 자체는 괜찮은 편이지만 집필에 있어서 전략적인 선택이 들어갔을 것이다.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도 못 갔음에도 "반동 지식인"으로 몰려 재교육받으러 산골로 들어가는 주인공들은 그곳에서 금지된 발자크를 만나는데.. 아마존 프랑스와 알라딘의 서평을 비교해 보면 프랑스인들은 이걸 독서와 자유에 대한 예찬 정도로 받아들이는 듯한 반면 한국인들은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 금서로 분류된 책들을 떠올리는 것 같다만 내게 이 책은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기보다 그냥 책에 대한 책, 책에 대한 욕망에 대한 책, 그리고 그 욕망에 따르는 환멸에 대한 책이다. 내겐 별로 새로울 게 없는 주제다. (내 일상이다 제길.) 다만 작중에 거론되는 책들을 들춰보고 싶은 생각이 들긴 한다. 선전문학의 대표로 거론되는 김일성의 《꽃파는 처녀》와 그에 대립되는 안티테제로서 발자크.

안경잽이의 금지된 서양문학 콜렉션을 훔치러 들어가는 두 주인공. 화자는 신고할 것이 두려워 그 중 일부만 빼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지만 그 친구 루오는 "결심한déterminé" 톤으로 말한다. "나는 저걸 다 읽고 싶어Je veux les lire tous!" 서물에 대한 욕망 때문에 신고되면 공안이라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문자는 악마의 발명품이지.)





DALF C1 시험을 치렀습니다. 수험생 모드는 임시 해제로군요.
아마 재수할 가능성이 꽤 높을 듯 싶긴 합니다.
아무튼 부담없는 펄프나 읽으면서 휴식.

by Noir | 2008/11/30 01:28 | Sententiarum | 트랙백 | 덧글(5)

한국어 공부는 끝이 없다.

한국어로 된 여러 웹페이지나 아티클 따위를 인터넷에서 보다 보면 참 그 개념을 잡기 어려운 단어들이 있다.

레포트. 나는 그게 대체 어떤 형식의 글인지 감을 잡을 수도 없다. 어떤 것은 소논문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개인적인 정서가 들어간 감상문처럼 보이며, 레퍼런스가 없는 것부터 인용양식을 지키는 것까지, 사실을 조사하는 것부터 심지어 픽션을 써내는 것까지 보았다. 정해진 형식이 없는 글은 대개 수필이라 부르지 않던가? 그렇다고 해서 레포트와 수필이 동의어는 아닌 것 같다. 누가 나더러 레포트 써 보지? 라고 하면 괴로울 것 같다.

문단. 한자로는 文壇. 어느 사전에는 "문인(文人)들의 사회"라고 정의된다. 일단 단(壇)이니 어딘가 올라서는 곳일 것이다. 그리고 그 어딘가에 올라선 사람들이 文人들일 것이며, 그들이 이루는 사회가 문단일 것이다. 나로선 그 壇이 무엇인지도, 文人이란 또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壇에 오르는 자격증명을 필요로 한다면 단지 읽고 쓸 줄 아는 것만으로 文人이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석학. 한자로는 碩學. 대가리 클 석에 배울 학이니 대가리가 배움으로 가득 찬 자를 말하는 단어라고 어설프게 짐작해 본다. 세상에 學의 종류는 많으니 석학의 종류도 많을 것이요, 외부인인 나로서는 대학에 학과가 개설된 것은 다 學이겠거니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호텔경영, 비서, 경호원, 관광 등 무수한 분야에서 경력이 쌓이고 배움으로 머리가 가득차면 석학이 되는 게 아닐까. 이렇게 보면 한국은 석학이 많은 나라일 것이다.

한국어 공부는 끝이 없다.

by Noir | 2008/11/24 01:46 | Monologue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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